수관 기피(樹冠忌避, crown shyness) 현상은 임관(林冠, canopy)을 이루는 수관(樹冠, crown)들이 서로 겹쳐지게 자라지 않고 일정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수관 경계부의 틈이 통로와 같이 보이게 되는 현상.
이러한 현상은 일부 수종에서 관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 한 개체 안에서도 나타날 수 있고, 이웃한 나무 사이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형성 원인이나 원리에 대해 명확히 밝혀지진 않았으나 서로 너무 붙어 있으면 수줍고 부끄럽기(shyness)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꽤나 마음에 드는 표현이지만, 기본적으로 제시되는 의견으로 다음 두 가지 정도를 들 수 있다.
바람에 의한 마찰
수관은 나뭇가지와 잎이 달린 양감 있는 덩어리로 간주해 볼 수 있는데, 바람이 불면 인접한 수관끼리 서로 부딪히게 된다. 이 결과 수관의 경계부가 마찰에 의한 물리적 손상을 입는다. 피해를 입은 수관 경계부의 가지와 잎이 고사하거나 떨어지면 그만큼의 공백이 생기게 된다. 환경의 영향을 받아 수동적 생긴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정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바람이 불 때 수관의 최대 수평 이동 거리와 수관 간에 생긴 틈의 폭을 측정해 비교해 보는 방법을 사용해 볼 수 있다.
그늘 회피
바람에 의한 피해가 보이지 않음에도 수관 경계부 간의 틈이 관찰되기도 한다. 수관끼리 가까워지면 광 수용체가 이를 감지하여 성장을 멈춘다는 것이다. 식물을 길러봐도 쉽게 알 수 있지만, 식물의 잎과 가지는 일반적으로 서로의 그늘을 피하고 빛을 찾아 자란다. 숲에서의 나무 역시 수관폭을 넓혀 가다가 인접한 수관과 가까워져 빛의 수용에 변화가 생기게 되면 해당 방향의 생장을 멈춰 광합성 효율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다는 것. 이는 주변 환경을 감지해 반응하는 어느 정도 적극적인 반응의 결과로도 볼 수 있고, 자동 반사적인 그늘 회피 전략일 수도 있다.
인접한 식물들이 서로 이와 같이 자라준다면 상호 간에 피해나 간섭을 최소화하며 경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상황에 따라 다 같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자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어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인접한 나무가 같은 종인 경우에는 틈을 만들고(동맹), 다른 종인 경우에는 그늘을 만들어 버리는 식(공격). 그야말로 전쟁터. 물론 이런 반응이 정말 서로 죽고 죽이려는 의도가 얼마나 내재되어 있는지 사실 알 수는 없다. 다만 식물이 다른 식물을 단칼에 고사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경쟁자를 배제시키려 한다기보다는 군락을 형성하면서 다른 종보다 우위에 서기 위한 전략 정도로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수관을 서로 회피하는 현상으로 인해 빛이 임관 깊숙이 들어올 수 있어 광합성에 유리할 수 있고, 숲의 중하층에서도 다양한 동식물들이 고루 살아갈 수 있게 되며, 숲의 광도, 습도, 온도 등을 변화시킴으로써 좀 더 건강하고 동적인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만은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참고자료
- Emily Osterloff. n.d. Crown shyness: are trees social distancing too?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James MacDonald. 2018. The Mysteries of Crown Shyness. JSTOR Daily.
- Wikipedia. 2024. Crown shy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