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한두 달 전쯤 싹 난 감자에서 싹 부분만 잘라내 먹고, 남은 부분은 화분에 심어 발코니에 두었었다. 물론 영양분이 잔뜩 들은 감자 대부분은 먹어버렸기도 하고 날씨도 한겨울이었어서 잘 자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감자는 추운 와중에도 억세고 튼튼한 싹을 키워나가긴 했는데, 일정 이상 크지는 못했고 제대로 된 잎 역시 내지는 못했다. 잎을 낸 게 없진 않았는데 잎을 활짝 펼치지는 못했다. 잎들이 잔뜩 웅크림. 이렇게 버티고 있다가 조만간 날이 풀리면 정상적으로 잎을 내며 자라지 않을까 싶었지만 한뺨도 크지 못한 채 점차 시들어버렸다.
워낙 좋지 않은 조건이었지만 힘내준 감자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화분을 비우기 위해 흙을 팠더니 이게 웬걸... 감자가 달려있었다!
감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일단 조금 자라 보긴 했는데 갖고 있는 양분은 부족하고 너무 추우니깐 정상적으로 자라는 전략을 수정한 것 같다. 지금 무리해서 자라기보다는 현재 보유한 잔여 양분으로 새롭게 괴경(塊莖)을 만들어 훗날을 도모하자는 전략으로.
잎도 제대로 내지 못했고 생존기간도 짧았기 때문에 광합성을 통해 괴경을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잘려 심겨진 괴경의 양분을 새로운 괴경에 옮겨 담아 완전체로 변환한 느낌.